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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아침 나들이: 느려도 전진한다>
간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 산책로 여기저기에 달팽이들이 보였다. 걷던 발걸음 잠시 멈추고 다리를 구부린 채 달팽이 한 마리를 바라다보았다.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달팽이가 집 한 채를 등에 지고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지만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다보니 제법 전진했다. 달팽이의 발걸음은 기어가는 것이다. 느림보 거북이가 달팽이와 자기를 비교하는 것을 안다면 대단히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우리가 느림의 대명사로 여기는 거북이보다도 한참이나 느리게 기어간다. 아주 많이 답답하게 여겨지지만 그래도 힘껏 기어서 걸어간다. 달팽이의 움직임이 전진과 진보를 이룬다. 나름의 의미 있는 성취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는 적잖이 힘이 된다...
2024.06.21 -
<청설모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침에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을 마치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다가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길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평시에도 길 위에 열매들이 떨어지며 소리를 내기에 그러려니 하고 ‘그냥 무시할까’하다가 평소보다 소리가 조금 커서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청설모 한 마리가 길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것이었다. 금방 지나올 때는 없었는데 곧바로 내 뒤로 나와서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순간적으로 땅에 떨어진 게 열매가 아니라 청설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설모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들더니 맥없이 앞쪽으로 비틀거리며 몇 발짝 갔고 곧바로 몸을 죽 늘어뜨리고는 그냥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가서 한번 볼까?’ 생각하다가 ..
2024.06.20 -
<줌과 받음: 삶의 두 면>
아침에 산책로를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다람쥐다. 큰 다람쥐도 만나고 작은 다람쥐도 만나고 청설모도 만난다. 오늘도 만났다. 특히, 오늘 길 위에는 새끼 다람쥐 한 마리가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작은 열매들을 주워서 열심히 배를 채우고 있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먹을 것을 열심히 씹어대는 모습을 얼굴에 미소를 담고 즐겁게 보는데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하나는, 다람쥐는 인간처럼 심고 가꾸고 거두지도 않는데 이렇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농사의 수고를 하지 않고도 먹을 것을 거저 받는 것이다. 이것을 '공짜, ' '선물' 또는 '은혜'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인식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지만 우리 삶에도 이런 ..
2024.06.19 -
<하는 사람만 한다>
어떤 사람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말했는데 대중에게 그 말은 개념적으로는 맞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일반 사람들의 삶의 세상은 좁고 할 일은 별로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사람들 대부분은 정해진 삶의 자리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살아가되 자기에게 정해지거나 주어진 일만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어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자기 경험 밖의 일이나 능력 밖의 일은 하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흔히 하는 말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이 일상을 살아간다. 그게 먹고사는 일에 바쁜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사실 우리는 일정한 삶의 범위 내에서 살아간다. 생활권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과 활동의 반경을 의미한다. 간혹 약속, 출장, 여행 또는 그 외의 특별한 이유로만 일정..
2024.06.18 -
<인생길의 그늘>
지금 여기까지 한 길을 오래 걷다 보니 때때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럴 때는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저절로 쉬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앞으로 갈 길도 먼데 그대의 그늘 밑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그늘이 있어서 좋습니다. 내 인생길에 늘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지치고 힘이 들 때 기대어 편히 쉴 수 있는 포근한 어깨가 되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일, June 16, 2024: mhparkⒸ2024)
2024.06.16 -
<산책로의 마음을 끄는 장면 세 가지 (3)>
나무숲 터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무계단을 만나게 되고 거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또 하나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을 만나게 된다. 나무숲 안쪽으로 이전에 잘린 나무들을 한데 모아 가지런히 세워놓은 곳이다. 그것들은 이제 생명력을 잃고 고목이 되어 나무숲 안에 놓여 있다. 누군가 자른 뒤에 그냥 내팽개쳐 놓지 않고 서로 기댄 상태로 가지런하게 세워 놓았다. 생명력을 잃은 모습은 적잖이 애처로이 보여도 그 가지런한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인다. 마치 캠프파이어를 할 때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세워놓은 모습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제는 고목이 되어 살아있는 나무들 사이에 있는 그 모습이 대단히 역설적이다. 그 나무들도 한때는 그 주변에 있는 나무들처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서 하늘 향해 무..
202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