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본능적인 삶을 위한 훈련>

2024. 10. 19. 12:58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옛말처럼,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는 쉽고 편한 것을 선호한다. 몸이 그것을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같은 본능이 있는데, 그것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동물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전인적으로 자라가면서 인간다움을 배울 때 동물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본능에는 양면이 있다. 곧 긍정적인 면-순기능-과 부정적인 면-역기능-이다. 본능은 생존을 위해서 중요하나 그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파괴적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이 본능을 지나치게 따르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식욕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몸에 문제가 생긴다. 과식은 만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수면은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잠만 자면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본능은 인간답고 건강한 삶을 위해 적절하게 통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본능을 통제하며 사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온전히 인간답지 못하게 살다가 죽는다.
 
본능과 지나친 욕구-인간의 동물적 특성-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절제 훈련 또는 훈육이다. 자기를 훈련하고 자제하는 힘을 기름으로써 인간은 오히려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동물적 자아 속에 두면 둘수록 부자유스러운 존재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스콧 펙(M. Scott Peck)은 이렇게 말한다. “도전을 피하려는 경향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성이라고 해서 필수 불가결하다거나 유익하다거나 바꿀 수 없는 행위라는 의미는 아니다. 바지에다 똥을 싸는 것이나 양치를 하지 않는 것 또한 본능적인 행위다. 우리는 비본능적인 것이 제2의 본능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비본능적인 것을 가르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진정 자기 훈육이란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 본능의 다른 특징은-아마도 이것이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일 텐데-비본능적인 것을 행하고, 본능을 초월하여 우리 자신의 본능을 개선하는 능력이다.”
 
인간 됨의 본능적 차원을 인정하고 긍정하면서 살아가되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본능을 초월해서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차원 높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삶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세상에는 그렇게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 번뿐인 인생길을 걸으면서 그냥그냥 살다가 세상을 떠나지 않고 무언가 자신에게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을 이루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지나치게 본능 친화적인 삶을 살면 안 된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고 싶다면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본능에 반하고 역행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훈육하고 길러야 그런 꿈을 이루어갈 수 있다.
 
물론, 본능에 반하거나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삶에서 즐거움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 곧 질적으로 다른 삶의 차원을 맛볼 수가 있다. 기어 다니는 아기가 그것을 즐길지라도 걸어 다니는 아이의 세계를 맛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다. 걸을 때만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앉고 싶은 마음, 눕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고 싶은 마음을 잠시 거부하고는 서서 걸어 다니면서 자기 꿈을 이루어가는 삶에는 밝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삶은 힘차다.
(금, October 18,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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