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30. 12:03ㆍ생각 위를 걷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인해 그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하면서 가르쳤던 한 학기 강의를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이 짙게 깔리고 찬바람이 강하게 스치는 초저녁에 호숫가에 조용히 다시 섰다.
얼음이 조금 얼고 아주 진한 감색(navy blue)의 호수 저편으로 보이는 조금 남아 있는 노을빛이 나름의 운치가 있어 보였다.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도 호숫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서 있는데 갑자기 ‘유종의 미’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하루를 열심히 일하던 해가 그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하면서 그 표시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남기듯이, 한 시점에서 일을 시작해서 잘해 오다가 어느 시점에 하던 일을 끝까지 잘 마치는 것은 분명 아름답다.
유종의 미라는 말은 한번 시작한 어떤 일을 끝까지 잘하여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시작한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위대하게’ 끝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그것에 상관없이 자신이 의미 있게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무엇이든지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 그것도 만족스럽게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은 매우 아름답다. 어떤 일을 시작하여 다 끝내지 못하고 미완성의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것도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다. 무엇이든 뜻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아름답다. 중도에 그만두더라도 그렇다.
그것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무언가 시작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심삼일’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소한 삼 일은 자기 마음을 담고 정성을 쏟을 일을 찾아서 그것에 열정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단 시작한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더 좋다. 그러고 보니 매 학기 강의를 잘 마무리한 것은 좋고 잘하는 일이다.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꽃만큼은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호숫가에 서서 잠시 석양의 잔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더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다음 주 이맘때쯤이면 매우 낯선 곳, 그러나 꼭 서 있어 보고 싶은 다른 곳에 서 있을 것이다. 어느 자리에 서든지 간에 하던 일을 계속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꽃만큼 아름다운 또 다른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 November 28, 2023: mhparkⒸ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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