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나무와 나>

2023. 11. 30. 06:18생각 위를 걷다

어느 집 널찍한 앞뜰에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뿐인
몇 그루 늦가을 나무
하늘을 보며 쓸쓸히 서 있다.

나도 잠시 가만히 서서
말 없이 나무들을 바라본다.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내 눈동자에 맺힌다.

한순간,
쌀쌀한 바람이 스쳐 간다.
잔잔하던 앙상한 가지들이
나뭇잎 대신
바람에 흔들린다.
부드럽게 춤을 춘다.

잎 달린 가지만큼은 못해도
앙상한 가지들이 나름의 춤을 춘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늦은 가을을 떠나보내고
바람 따라
짙은 겨울을 부르는 듯 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엔.

나무는
계절에 따라
실존의 겉모습이 바뀐다.
늦가을은 그 실존의 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나도
생의 계절에 따라
실존의 겉모습이 바뀐다.
간혹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은
내 실존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늦가을 나무는
거울처럼 나의 본모습을 반추해준다.
스스로 입힌 잎들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나를 보게 해준다.

그렇게 나무를 보다가 나를 본다.
그렇게 나뭇가지를 보면서
내 모습을 본다.

그렇게 어느 집 앞뜰의 늦가을 나무를 보면서
내 마음의 뒷뜰의 잎이 진 참된 나를 본다.
(수, November 29, 2023: mhparkⒸ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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