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6. 12:53ㆍ생각 위를 걷다
“어제 여기서 누군가가 지나간 세월을 자기에게 있어서는 모두 잃어버린 세월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이러한 느낌을 단 한 순간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1939년 여름의 결단도 후회한 일이 전혀 없다. 도리어 외면적인 생활의 경로에 관해서 나의 생애는-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언제나 아주 직선적이고 굴절이 없는 과정이었다는 인상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부단히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것으로서, 거기에 대해서는 다만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나의 현재의 상태가 나의 생애의 끝이 된다고 해도, 거기에는 하나의 의미가 있으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디이트리히 본회퍼).
☞ 답글: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는 것은 곧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삶의 내용이 되고 우리의 삶 자체가 된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비인격적인 경험체이다. 그것은 인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끊임없이 흐른다. 그래서 인격적인 우리가 비인격적인 시간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자기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여기에서 선택의 문제가 제기된다. 선택은 크든지 작든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그것이 자기 삶에 크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소한 선택이 의미 있고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신중하고 중요하게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자기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책임을 돌릴 수 없다.
그래서 살아온 세월이 가급적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도록 유한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살되 좋은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은 지혜롭고 복되다.
사람들 대부분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는 게 뭐 별거 있나’라고 말을 하곤 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실제로 때로 인생은 별거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별거 있을 수도 있다. 별거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다른 차원의 삶이 있을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얻은 시간’이 딜 수 있다.
삶의 조건은 공정하지 않을지라도 시간은 편향적이지 않고 중립적이며 모두에게 공평하다. 시간은 어느 특정인에게 특별히 유리하게 흐르지 않고 공평하게 흐른다. 그래서 시간은 대부분 사용하기 나름이다. 자기 삶이 별거 있는 것이 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고 자기 삶이 별거 없는 것이 되게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결과도 자신의 것이다.
삶의 순간마다, 특별히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지혜롭게 선택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삶은 어느 정도, 때에 따라서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 또는 그만큼 후회를 줄일 수 있다. 본회퍼의 고백이 참으로 놀랍다!
(목, June 5, 2025: mhparkⒸ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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