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글라스가 문제다>

2025. 5. 14. 09:23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고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안경을 처음 쓸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적잖이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계속해서 쓰고 생활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이제는 분명하게 볼 수 있어서 안경을 쓰고 사는 게 훨씬 편하다.
 
반면에 선글라스라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라고 여겨졌고 굳이 ‘그런 것까지 쓰고 살아야 하나’라는 마음도 있어서 그것에서 떨어져 살아왔다. 그러다가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햇빛이 강한 날에 쓰려고 눈에 맞는 도수를 넣은 선글라스를 지난해에 장만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집에 두기만 하고 잘 사용하지 않았다. 일종의 장롱 면허증처럼 ‘서랍 선글라스’가 된 것이다. 그래도 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이라서 그냥 묵혀 두는 것도 그리 좋게 여겨지지 않아서 가끔 착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햇빛을 차단해주는 것이 좋긴 한데 앞이 약간 거무스름하게 보여 착각을 일으킬 때가 종종 있다. 햇살 눈부시게 밝은 날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을 잊은 채로 가끔 ‘밝은 대낮인데 왜 이리 세상이 어둡지?’라고 자문하다가 선글라스를 낀 것을 깨닫곤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서 특히 착각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이다. 꽤 멋져 보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곧바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찍어 놓고 확인해 보면 어둡게 보인다. 그러면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사진이 왜 이렇게 어둡게 나온 거야’라고 불평하려고 하다가 ‘아 지금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라고 갑자기 깨닫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카메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서 보는 것에 있는 것이다. 문제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가 살아갈 때 직면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것에 있어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하여 아주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범하는 오류이다.
 
마음은 하나의 창과 같다. 마음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창이다. 그래서 창에 먼지가 껴서 지저분하면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음에 먼지나 때가 껴서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렵다.
 
실제로 세상이나 어떤 것은 자기 마음의 안경의 상태나 색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마음에 색이 덧입혀지면 세상은 마음의 색대로 보인다. 세상이나 사물이 그 색을 통해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세상 탓을 하지 말고 먼저 자신에게서 색이 있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안경을 투명한 알로 바꾸거나 투명하게 닦는 것이다.
 
말은 쉬울지 모르나 본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가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함에도 그것은 균형 잡힌 좋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쉽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발전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이루어갈 수 있다. 변화는 인식과 더불어 시작되고 그 인식한 것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할 때 가능해진다.
 
고대의 금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바로 이 점을 시사한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알 때 존재의 변화와 상승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선글라스를 통해 재확인받은 교훈이다.
(화, May 13, 2025: mhparkⒸ2025)

내 인생 첫 선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