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

자동차 운전을 배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차를 탈 때 옆자리에 앉아서 가졌던 생각이 있다. ‘앞뒤 좌우로 차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빨리 달리면 다른 차들과 부딪쳐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의구심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을 배우고 실제로 운전하면서 떨쳐버리게 되었다.
 
우리는 세탁기나 휴대전화 같은 전자제품을 사게 되면 우선 그것의 설명서를 보면서 작동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른 것들도 대부분은 같은 과정과 절차를 거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소설과 관련된 강의나 강좌 또는 그것과 관련된 책들이나 자료를 보면서 공부할 것이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시인이 되기 위해 몇천 권의 시집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책을 잘 읽으려면 최소한 책을 읽는 법과 관련된 책 한두 권은 읽어보는 게 기본이다. 글을 논리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잘 쓰려면 글쓰기와 관련된 책 한두 권쯤은 읽어봐야 글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각 분야의 글쓰기는 나름의 규칙-각주 사용 방법이나 인용문 사용 방법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인생길을 걸으면서도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분명한 것 두 가지 요소이다. 각 개인은 매일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아직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죽음은 어느 날 자기의 최종적인 운명으로 찾아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과 관련된 책이나 글을 읽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탐구되거나 정리된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인데 삶에 대한 지적 이해를 방치한 채 살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냥 세월 따라 또는 세상 따라 별다른 주의 없이 살다 보면 세월이 흘러 어느 순간에 인생의 후반이나 황혼 녘에 이르게 되고 그때는 인간 실존의 허무함이나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자기 인생의 시간이 많이 흘러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나이에는 할 수 있는 게 특별히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어도 그때는 이미 늦게 된다.
 
그래서 참다운 지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것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을 얻은 후에 날마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의식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매일의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 자기 인생을 명작으로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목, April 24, 2025: mhparkⒸ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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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관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