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라도>

2023. 12. 11. 04:11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꿈을 담고 그 꿈을 펼쳐가고 싶은 곳에서 일정 기간 지내면서 열정을 불태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 그곳에서 자기만의 연구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쌓으면서 지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지루하고 힘이 들어도 내적으로는 기쁘고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학창 시절 내게도 그런 곳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때 내게 그저 바라는 곳이 되었을 뿐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그 대신 다른 곳에서 그 꿈을 펼쳐가야 했다. 삶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 뜻하지 않게 그곳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들르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며 꿈꾸던 바로 그곳을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쌀쌀한 기운이 머무는 시간에 천천히 걷는데 예전에 꿈을 품고 준비하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면서 '그때 이곳에 왔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한걸음 또 한걸음 내딛었다. 다 부질없는 자문인 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추억하며 웃음을 지울 수 있었다.
 
조금씩 어둠이 더 내리고 짙어갈 때 조용히 그곳을 떠나왔다. 삶에 꿈을 담고 일정 기간 머물면서 그것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다가 떠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잠깐 머물다가 떠나가는 사람으로. 그럼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마음에 다소곳이 품었던 곳이었기에.
 
떠나오는 나의 등 뒤로 어둠이 더 짙게 깔리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로등 불빛이 그만큼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 오지 못하고 이제야 온 나를 위로라도 하듯이 내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일, December 10, 2023: mhparkⒸ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