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0. 12:47ㆍ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군대나 감옥같이 나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규율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곳에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도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삼시 세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곳이나 상황에서는 평상시에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된다.
몸의 일부가 문제가 생겨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고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몸의 균형이 깨어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면 아무 때나 몸을 누이면 잠이 오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된다.
살아가다 보면 삶이 참 단조롭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흔히 하는 말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삶이 그렇게 단조롭기에 사람들은 오락이란 것을 개발하여 즐기면서 단조로운 삶에 인위적으로 흥미와 역동성을 가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삶의 단조로움과 평온함은 인생에서 가장 좋고도 감사해야 할 내용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일매일 단조롭게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지루함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아니, 인생이란 어느 정도 지루하고 단조로운 것이라는 걸 인정하기에 그것을 수용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내게 주어진 또 하루를 굶지 않고 삼시 세끼를 먹으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좋다. 단조롭고 평온한 일상을 통해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한때 나의 의지나 나의 처신과 상관없이 짧지 않게 인생이 참 어렵게 느껴지고 힘든 상황에 있게 되었을 때-물론, 산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게 끝인 것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 이유로 지금 걷는 인생길에서 밋밋하고 권태롭고 단조롭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게 느껴지는 일상을 살아갈 때 대단히 감사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극적인 걸 찾고 마약같이 순간으로 기분을 들뜨게 해주고 뿅 가게 해 주는 것을 찾아다니기도 하나 나는 그냥 그런 일상을 누리면서 감사한다. 이런 일상이 깨어져서 다시금 어려움으로 꽉 찬 풍랑이 이는 그런 상황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기근으로, 굶주림으로, 고문과 박해로, 폭력으로,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오늘도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고 평온한 하루, 그러나 보람과 의미로 채워진 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하루의 문을 닫는 시간에 이르렀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이 글을 쓰는데 푸릇푸릇하던 젊은 시절에 군 생활을 할 때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서 불렀던 군가가 떠오른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고향의 안방은 아니지만 내 쉴 곳, 내 보금자리에서 두 다리 쭉 펴고 편안히 쉬면서 오고 있는 내일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미소를 담아 떠나보낸다.
(화, April 9,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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