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나무>

2023. 1. 29. 12:03소중한 어제-과거의 글자취

어린 시절 시골 집 옆에

커다란 단감나무 하나 채소밭 끼고

홀로 우뚝 서 있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전에 생겨나

늘 거기에 서 있었다.

 

여러, 여러 해

따스한 햇살 받으며

거친 비바람 맞으며

내가 이 땅에 오기를 그렇게 오랜 세월

거기서 홀로 기다리며 보낸

너의 인고의 나날들

 

사계절을 돌고 돌아 숨박질 하듯

손꼽아 나를 기다리더니

어느 날, 우린 그렇게 만났다.

 

내 어린 시절

늘 포근한 날개

시원한 그늘로 날 안아주다

가을 녘,

푸르스름하던 감 무르익어

-간 홍시가 될 때,

애타게 기다리던 내 마음도

어느 새 함께 빨갛게 익었다.

 

잎들 지고 찬 서리 내릴 때

앙상한 가지 끝에 아슬아슬 달려

-간 볼 더욱 빨갛게 빛나곤 했는데,

 

풀잎 위 남몰래 살포시 떨어진 녀석들

살짝 집어 입에 대고 힘껏 빨아들이면

그 달콤한 속살 가득 내 입에서 춤추다

나와 하나가 되곤 하던 그 시절.

 

세월 지나고 지나

이제  푸르던 나 빨갛게 익어가니

나도 내 어린 시절 너만큼

서 있구나!

 

푸르던 잎들 져 뒹구는 낙엽 되고

힘겹게 영근 열매들 하나 둘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을 때까지

늘 빨-갛게 설렘 주는

추억의 나무 되게 꿋꿋이 서 있으리라.

(, Nov. 15, 2020; mhpark2022)

'소중한 어제-과거의 글자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과 함께 걷다>  (0) 2023.01.29
<책에게>  (0) 2023.01.29
<낙엽 하나의 가치>  (0) 2023.01.29
<비상>  (0) 2023.01.29
<여전히 가야 할 길>  (0) 202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