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1. 00:19ㆍ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여러 벤치가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공원의 중앙 부분에서 약간 바깥쪽에 위치한 벤치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다른 벤치들은 시멘트로 된 옅은 회색벤치였으나 그 벤치는 황갈색으로 된 벤치였다.
재료도 시멘트가 아닌 약간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어떤 것이었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잠시 쉴 겸 그쪽으로 가서 거기에 앉으려고 하는데 그 벤치도 누군가 기증을 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이름, 그가 산 삶의 기간(1938-2021), 그리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이 땅에서 인간의 실존의 마지막은 죽음을 통한 떠남이다. 이 세상과의 이별이다. 이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면 죽게 되는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이 떠남은 그와 관계가 있는 누군가에게는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슬픔을 남긴다. 떠난 사람이야 그게 끝이니 느끼지 못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떠나보낸 뒤의 실존적 몫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떠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정이 깊을수록 아픔과 그리움은 그만큼 더 커진다. 장례식장에서 유독 크게 울면서 슬퍼하는 사람은 대개 둘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곧 살아생전에 고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 상실감이 너무 크거나 고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며 살아서 제대로 못한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런 후회는 이미 때 늦은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후회해도 그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과 이별을 할 때 그의 몸은 떠나지만 떠나지 않고 남는 것이 있다. 그의 삶의 행적이다. 떠나는 인간은 모두 자신이 살았던 삶을 남기고 떠나간다.
대개 한 사람의 일생을 표시할 때 태어난 연도와 죽은 연도 사이에 짧은 하이픈(-)으로 연결하여 표시한다. 인간의 삶은 길게 살았든지 짧게 살았든지 동일하게 같은 길이의 하이픈으로 표시하며, 우리가 알지는 못해도 그 하이픈에는 저마다 그가 살았던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이처럼,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그 삶은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벤치에 써있는 문구는 일리가 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알젠티나야, 나를 위해 울지 말아라. 사실은 말이야 난 너를 결코 떠나지 않았단다.”
몸은 훌쩍 떠났어도 살면서 함께 했던 시간은 남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뒤에 남아서 상실감에 젖어 있는 사람이 할 일은 많이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함께 했던 시간을 아름답게 간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남은 인생길을 아름답게 걷는 것이다.
자신이 떠나게 되었을 때 상실감을 갖게 될 또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멋진 삶을 남기면서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오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면 되고,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면 반성하면서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벤치에 앉으려다가 거기에 써 있는 문구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던 것을 적어보았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될 텐데 덜 후회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살자.
(수, July 17, 2023: mhparkⒸ2023)
'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아무 것도 없다> (0) | 2023.07.29 |
---|---|
<인생 관리: 삶은 어느 정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0) | 2023.07.27 |
<우리 생각이 우리 삶에서 작용한다> (2) | 2023.07.19 |
<생의 시선은 앞에 두되, 삶의 초점은 오늘에 두고 매일을 살기> (0) | 2023.07.15 |
<두 세계의 삶: 걸으며 생각하며> (0) | 2023.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