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가 전하는 메시지(7): 한때 “있었다!”>

2024. 5. 27. 09:57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강의가 끝나면 집으로 오기 전에 습관처럼 들르는 호숫가를 걷다가 거기에 놓인 여러 개의 벤치 중 하나의 아래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 WAS! But words are wanting to say what. Think what a mother, a wife, a daughter, a friend should be; And ○○○○ was that! In loving memory of ○○○ ○○○ ○○○ 1957-2002. Love always.…”
 
사랑하는 가족이 떠난 이를 그리워하면서 써 놓은 것이었다. 그와 같이 대부분 벤치는 떠난 사람들을 추억할 목적으로 가족이 기부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문구를 읽다가 특히 하나의 단어 “WAS(있었다)!”에 눈길이 갔다. 한참을 응시하는데 그 단어의 묵직한 의미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한때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한때는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떠나고 없다.’ 있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잠시 살다가 떠난다. 지상의 어떤 곳에 얼마간 현재해 ‘있다’가 어느 날 떠난다. 그다음에 그는 과거의 어느 때에 ‘있었다’가 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실존적 존재성은 “있다”에서 “있었다”가 된다.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있었느냐(was),’ 곧 ‘어떻게 있다’가 떠났느냐이다. 어떤 모습이 가장 좋은 모습인가의 문제는 저마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에서의 어떤 특정한 당위성(should be)을 인정한다면, 가장 좋은 모습은 분명 보편적인 선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관점에서 이것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실 행복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택하고 있다. 행복은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생활은 덕 있는 생활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덕 있는 생활이란 노력을 요하는 것이요, 오락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력을 요하는 것들은 우습고 오락적인 것들보다 더 좋으며, 또 무엇이든지 두 가지 것-그것이 우리 자신 속의 두 요소이건 혹은 두 사람에게 속한 두 요소이건-가운데 보다 좋은 쪽의 활동이 좀 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보다 좋은 쪽의 활동은 그대로 곧 보다 좋은 활동이요, 또 보다 많은 행복의 성질을 띠고 있다…사실 행복은 그러한 소일거리에 있지 않고…덕 있는 활동에 깃들여 있다.”
 
“행복이란 것이 덕을 따르는 활동이라 할진대, 당연히 그것은 최고의 덕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최고의 덕은 우리들 속에 있는 최선의 부분의 덕일 것이다. 우리의 본성을 지배하고 인도하며, 또 아름답고 신적인 것들을 상념하는 이 부분이 이성 이건 혹은 다른 어떤 것이건, 또 그 자체가 신적이건 혹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신적인 것이건, 하여간 그 고유한 최고의 덕에 일치하는 활동이 완전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덕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아레테(arete)는 탁월함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덕이 있는 삶은 탁월한 삶을 의미하며 탁월한 삶을 살려면 덕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is) 때 덕이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탁월한 인생이 되고,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사람은 덕이 있었다(was)’라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호숫가의 한 벤치 아래의 비문이 다시금 내게 살아 있을 때의 삶의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일, May 26,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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