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5. 21:54ㆍ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필요할 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어 보다 보면 가끔 페이지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메모지들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여러 토막글이 적혀 있곤 하는데, 예전에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놓은 것들이다.
언제 써 놓았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것들을 다시금 보게 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고 그것을 써놓았던 이전을 되새기곤 한다. 어떤 때는 그것을 쓴 나 자신이 봐도 마음에 쏙 드는 글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땐 조금은 스스로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말을 썼지?’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건 작은 쪽지에 써놓았고 또 어떤 건 물건을 사고 받은 영수증 뒷면에 써놓기도 했다. 아마도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적어 놓고 싶었는데 마땅한 종이가 없어서 그냥 영수증 종이 뒷면에 써 놓은 것 같다. 아무튼 책을 펼쳐보다가 그런 것을 만나면 감회가 새로워진다.
어제도 책을 스캔하다가 그런 쪽지, 곧 작은 영수증 종이 뒷면에 적혀 있는 글을 발견했다. 그 쪽지 메모와 마주치고는 잠시 눈길을 주면서 읽는데,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가 생각났다. 그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종류의 글을 만나게 된다. 그가 틈틈이 써 놓은 주옥같은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길다.
그가 그렇게 써놓은 문장 중에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말이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따라서 우리의 모든 존엄은 사고에 있다. 거기서 우리를 드높여야 한다…그러므로 올바르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자. 바로 이것이 도덕의 근본이다.”
아주 멋진 통찰이다. ‘인간은 곧 사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고는 인간 됨의 본질적인 측면이며 아주 중요한 특성이다. 사고는 인간을 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게 만든다. 사고를 떠나서는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생각이든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어디에든 적어 두면 좋다. 물론, 그런 생각들을 위한 노트에 적어 두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가치나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추억과 생각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개인적인 유산이 될 수 있다. 최소한의 글쓰기는 그것으로도 족하고 의미가 있다.
책을 스캔하려다가 만난 작은 영수증 쪽지에 적힌 글을 보면서 잠시나마 지난 시간을 추억할 수 있었다. 이전에 품고 적어 두었던 쪽지 글과의 조우를 통해 내 이전 시간과의 만나고 되새길 수 있었다. 즐거운 쪽지 메모와의 재회!
(수, May 15,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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