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4. 09:02ㆍ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인간은 시간적 존재이면서 공간적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살다가 시간과 함께 떠나간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공간적 존재이기에 집이라는 거처를 중심으로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거처는 물리적인 공간 또는 외적인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공간 또는 내적인 공간도 있다. 내적인 공간은 우리의 마음이 거하는 공간, 곧 우리의 정신이 거하는 곳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바로 이 거처를 잃어버린 채 정신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방황하면서 떠돌이처럼 살아간다.
물리적인 집은 넓고 좋은 곳에서 살면서도 마음속의 집, 내면의 정신적인 집이 없거나 무너졌거나 허름해서 방황한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는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차를 몰면서 사나 내면에서는 정신적으로 풍랑이 이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오늘날을 가리켜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특성 중 하나는 상대성이다. 이 시대정신 속에는 절대적이라는 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각자 자기가 정하는 게 곧 규범이고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관성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또 하나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결정이 자기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나중에는 필연적으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삶을 잡아주거나 이끌어줄 어떤 특정한 기준을 상실하게 되면 방황하고 표류하게 되어 있다.
이런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어떤 특정한 기준이 인정되지 않기에 필연적으로 인생의 방향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적인 절대 기준이나 지표란 것이 없기에 인간은 자기 마음을 줄 수 있는 견고하고 안정된 것이 없게 되고 결국에는 구름처럼 떠도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마음의 고향 상실’(the homeless of the mind), 더 근본적으로는 ‘마음의 집 상실’(the houselessness of the mind)이다. 마음의 고향 상실 또는 마음의 집 상실은 인간이 갈 곳을 잃어버린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린 존재의 상태를 말한다. 사람이 흔히 마음을 둘 곳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마음의 집, 마음의 거처를 의미한다.
이런 특성은 오래전에 최백호 씨가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그래서 마음의 발길은 갈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사람이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갈 곳도 잃어버린 채로 정신적으로 떠돌다 보면 내면 깊은 곳에서 이런 노래가 들려온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나그네 설움).
실제로 오늘날 몸은 갈 곳이 있는데(물론, 몸이 갈 곳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마음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역설적으로, 몸을 두는 물리적인 집은 좋은데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둘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것이다. 마음이 한 곳을 정하여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집, 마음의 거처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인간은 많은 경우 마음이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했으나 더 근본적으로는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렸거나 둘 곳 없는 실존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연못이나 논의 물 위에 떠서 사는 부평초(개구리밥) 같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세파에 떠다니고 떠밀려 다닌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무엇인가? 다시금 마음이 거할 수 있는 안전하고 견고한 절대적인 기준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탐구하고 찾아야 한다. 찾게 되면 그것에 따라 살면 된다. 찾아도 만나지 못하거나 없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그것에 맞게 살면 된다. 그 경우에 존재론적으로 마음의 거처는 없는 것이기에 정신적으로 떠돌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본래 인간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삶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고 탐구는 해야 한다. 자기의 전 존재와 삶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마음의 고향, 마음의 집은 꼭 필요한 것이다.
(금, May 3,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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