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쁨>

2023. 11. 22. 13:05생각 위를 걷다

그리 넓지 않은 길을 따라 조용히 걷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약간 고적해 보이는 늦가을 나무 곁에
한 그루 나무처럼 나란히 선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이 가을의 마지막 길목에서
그것도 겨울로 가는 늦가을의 끝자락에
아직 나뭇가지들에 조금 남아 있는
단풍잎들의 부드러운 몸짓에서
여전히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내 곁에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 그 가지들 사이로
지난봄과 여름 내내 푸르던 잎들이
나의 눈가에 푸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미 낙엽이 되어 바람 따라
길가 여기저기로 뒹구는
떠돌이 운명이 되었지만.
 
그래도 지난봄과 여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가을의 나무들은
스쳐 가는 바람을 맞으며
쓸쓸히 서 있어도 그 나름으로 의미이다.
 
가을의 빈 들판이 의미 있는 것은
지난봄과 여름의 푸르른 날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봄과 여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가을은
푸르른 바탕의 갈색 풍경화다.
 
우리 안에 아쉬움을 남기며
낙엽 따라 가버리는 계절 가을
그 속에서 기쁨도 누린다.
 
가을의 기쁨은 거두는 기쁨이다.
지난봄과 여름의 수고가
열매 되어 결실의 미소로 다가온다.
 
가을의 기쁨으로
추운 겨울은 하얀 솜사탕 같고
하얀 솜이불같이 포근해진다.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를
의미 있게 이어주는 중매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은 보이지 않는 다리이다.
 
이 가을에
거두는 기쁨을 한 아름 안고서
늦가을의 고적한 거리를 걸으며
포근히 겨울로 향한다.
 
떠나가는 기척도 없이
잠시 멈춘 발걸음을 다시금 살며시 뗀다.
내 곁에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가을 나무에 방해되지 않게.
(월, November 20, 2023: mhparkⒸ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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