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작용>

엊그저께는 오래간만에 아직은 춥게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이 스쳐 가는 산책로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홀로 걸었다. 걸으면서 산책로 주변의 앙상한 숲속 나무들을 보기도 하고 산책로 바로 옆 차가운 대지에서 존재감 없이 자라나고 있는 풀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길가 바로 옆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작은 나무의 나뭇가지들을 보다가 특이한 모습에 눈길이 갔다. 나뭇가지 끝자락에서 새순 망울이 생기면서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트지는 않았지만 분명 몸부림치고 있었다. 거기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느꼈다.
 
그 모습이 나의 마음과 눈길을 끌어당겨 가던 길 잠시 멈추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다보았다.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스쳐 갔다. ‘나무는 자기 안에 계절의 시간표와 알람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해마다 봄이 되면 누가 깨우지도 않는데 알아서 겨울잠에서 깨어 세상을 향해 힘껏 기지개를 펴는 것을 보니. 그리고 때가 될 때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작은 나무 앞에서 그렇게 잠시 머물다가 다시 발걸음을 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 나무도 그 생명이 움트려면 때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나무가 죽은 고목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한에서 그 힘은 반드시 발휘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계속된 계절의 순환을 거치면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생의 네 계절-봄 인생, 여름 인생, 가을 인생 그리고 겨울 인생-을 거친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법칙이고 원리이다.
 
그런데 인생의 계절에는 이러한 연대기적 계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계절, 정신의 계절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서는 여러 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오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폴 투르니에(Paul Tourinier)의 다음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인간의 생애에는 가을에라도 봄이 올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내면과 마음의 계절에는 이런 특성이 있다. 그래서 봄에도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을 느낄 수 있고 여름에도 봄이나 가을이나 겨울을 느낄 수 있다. 가을에도 봄이나 여름이나 겨울을 느낄 수 있고 겨울에도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청춘의 계절에도 노년의 계절을 살 수가 있고 노년의 계절에도 청춘의 계절을 살 수가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삶의 양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청춘인데도 노년처럼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노년인데도 청춘처럼 사는 인생이 있다.
 
그러고 보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와 방식이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면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모습이 겨울나무 같을지라도 언젠가 때가 되면 그것이 새순 망울을 발아시키고 새싹을 내고 푸르른 나뭇잎을 내면서 풍성하고 멋진 여름 나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힘이다. 단지 약간의 과정이 필요할 뿐 반드시 그렇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때를 생각하고 기다리면서 살되 날마다 주어지는 오늘을 ‘내일이 또 있는데 뭐 어때’라고 아무렇지 않게 낭비하면서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농부의 마음과 삶의 방식으로 잘 활용하면서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는 게 지혜롭다. 장래에 넓게 펼쳐질 인생 나무의 푸르른 잎은 바로 오늘 새순 망울이 움터 새싹을 내고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 손길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매일매일 허송세월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그리고 성장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화, March 25, 2025: mhparkⒸ2025)

찬바람 부는 초봄의 나뭇가지 끝 새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