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력: 정신적인 면에서의 성찰>

몇 년 전에 며칠간 계속 속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의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혹시 ‘암 같은 큰 병이 생긴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겨서였다. 조금 대기하다가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의사가 나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죽 훑어본 후에 나를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혹시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었나요?” 가족력(family history),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병력(family medical history)에 대한 물음이었다. 내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러면 “일단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관련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며칠 뒤 의사의 말대로 검사 결과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가족력, 이것은 주로 신체의 병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많은 경우 병이나 몸의 조건이 유전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어떤 신체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자녀들에게도 나타날 가능성이 그것만큼 높아진다.
 
가족력이란 말을 생각하다 보면, 꼭 신체적인 면과 관련해서만 다루지 않고 다른 면, 곧 정신적인 면에서도 다루는 게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정신적인 것도 유전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러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정신적인 면에도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신체적인 면에서의 가족력은 선천적으로 유전되는 경향이 있고 정신적인 면에서의 가족력은 대개 후천적으로 전해지고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신적인 면에서의 가족력 형성의 주되고 일차적인 장은 가정이다. 한 개인은 자기가 속한 가정 또는 그와 같은 곳에서 인간으로서의 내적 모습이 대부분 형성된다. 어린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집에서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는 중요하다. 음식에 의해 가족력의 나쁜 점이 덜 작용할 수도 있고 가족력의 잠재성이 나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정신적인 면에서 보면,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자녀가 태어나 자랄 수 있고 좋은 부모 밑에서 좋지 못한 자녀가 태어나 자랄 수도 있다. 좋지 못한 부모 밑에서 좋은 자녀가 태어나 자랄 수 있고 좋지 못한 부모 밑에서 좋지 못한 자녀가 태어나 자랄 수도 있다.
 
왜 그런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런 이유 중에 타고난 심성과 물리적 환경에 의한 영향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고 추측해볼 뿐이다.
 
우리가 위의 네 가지 경우를 다 인정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전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가 특히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고 지도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 자신이 먼저 그러한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한다.
 
정신적 가족력의 잠재성이 좋게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부모가 정신적인 면에서 문제가 많다면 어떻게 자녀에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가족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부모는 자녀의 모범이고 본보기이며 역할모델이다. 자녀는 부모 가까이서 부모를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 건강한 부모가 전인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자녀를 양육하면서 잘 지도해주어도 비뚤어질 수 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것은 그런 자녀의 책임이고 몫이다. 그러함에도 부모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정신적인 면에서 좋은 가족력을 형성해 가려고 힘쓰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치와 의미가 있다.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녀가 가장 많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그 영향과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좋은 가족력을 형성해 가는 일은 분명히 어렵고 힘들며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든다. 그러나 대단히 귀한 일이다.
 
개인이 건강해야 가정도 건강할 수 있고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할 수 있다. 사회가 건강해야 나라도 건강할 수 있다. 본질적인 면에서 그 출발점은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 모두의 건강한 정신적 가족력이다.
(화, January 21, 2025: mhparkⒸ2025)

강릉 경포호의 한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