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호숫가의 밤 그리고 밤>

2023. 11. 17. 21:39생각 위를 걷다

어둠이 일찍 깃든 늦가을 초저녁
걷기도 하고 마음에 쉼을 줄 겸 해서
가까운 호숫가를 찾았다.
 
바람은 거의 잠이 들었는지
짙은 어둠만
잔잔한 호수를 포근하게 덮고 있었고
인적이 거의 끊겨 조용하기만 한
호숫가 산책로를 가로등 불빛만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길을 가로등의 특별한 환대를 받으며
은은한 불빛을 벗 삼아 천천히 함께 걸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며
간간이 호수를 보는데
한 무리의 오리들이 삼삼오오 어둠 속에서
즐겁게 노닐고 있었다.
 
길 위에 쓰인 산책 거리 표시 숫자를 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는 사이
낭만 가득한 늦가을 호숫가의 밤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인지
서너 사람 스쳐 지나갔다.
 
어두운 하늘에는
별 몇 개가 빛나고 있었고
비행기가 불빛을 반짝이며
목적지를 향해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깊어 가는 어둠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가
뒤돌아 걸어온 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은
낭만적인 늦가을 호숫가의
고요한 정취를 담은 발걸음만큼이나
마음이 더 가볍고 편안했다.
 
그 평온한 느낌,
그 황홀한 분위기를 잠시 더 간직하고 싶어서
근처 찻집에 들러
커피잔에 고스란히 담았다.
 
곧이어
피어오르는 그윽한 커피 향에 묻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늦가을 호숫가의 예쁜 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우리 인생 속의 또 하루가
그렇게 우리를 떠나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다시 못 올 시간 속으로
우리에게서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목, November 16, 2023: mhparkⒸ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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