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0. 07:24ㆍ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인간과 행복, 그 둘은 서로 나뉠 수 없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happiness/eud(a)emonia)을 자기 철학과 윤리의 중심 주제들 가운데 하나로 삼고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바 있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추구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추구라고 여겨진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행복은 그만큼 중요하다. 많은 경우 행복은 분명 인간의 역동적인 삶의 동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이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목표로 삼으면 그 인생은 불행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일시적인 느낌(감정)이지 영구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행복에 관한 루소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복의 일시성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점점이 다양하게 이어진 짧은 행복의 순간들을 내적이고 항구적인 즐거움으로 지속시켜주지 못했다. 반대로 삶의 여러 가지 곤경들 속에서 나는 부드럽고 감동적이며 달콤한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내 안에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감정들이 운명으로 인해 가슴 속에 억제되어, 좋은 평가를 받는 대상들을 향해 발산되지 못했을 때, 오히려 나는 존재의 달콤함을 더 잘 맛볼 수 있었고, 더욱 진지하게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세인들이란 어떤 대상을 자기 스스로 음미하고 판단하기보다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관심사만 따를 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행복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어떤 항구적인 상태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기에, 불변의 형태를 갖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 자신도 변한다.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삶의 행복을 위한 모든 계획은 하나의 망상일 뿐이다. 정신적 만족이 올 때 그것을 이용하자. 우리의 실수로 그 만족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그렇지만 그 만족을 붙들어두려는 계획은 세우지 말자. 그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일시적인 감정의 상태이다. 모든 감정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절대로 머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행복은 무지개와 같고 안개와 같다. 그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실제로는 만지려면 만져지지 않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냥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
이처럼, 행복은 마음(heart)의 상태(state)이다. 행복은 존재의 조건도 존재의 필연성도 아니다. 행복은 존재의 항상성이 아니라 일시성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행복의 지속적인 상태 안에 있을 수 없다. 인간이 감정적으로 늘 고조되어 있으면 인간은 미친다. 사람이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런 삶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다.
행복감은 가끔 느껴도 존재하고 살아가는 데는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행복을 드문드문 느낀다고 해서 삶을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생의 의미와 만족을 느끼지 못할 때는 삶을 지속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와 생의 만족은 행복감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의 지평과 심층(넓이와 깊이)은 대양보다 넓고 깊다. 인간의 감정의 세계를 만족시키는 것들 가운데 행복은 그중 하나이다. 물론, 행복은 그중 심층과 상층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전인적 특성을 고려할 때 생의 참된 만족은 어느 하나의 요소에 근거하지 않으며 그 하나가 절대적인 것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삶의 존재론적 풍성함은 감정에만 근거하지 않고 전인적 활동, 곧 지적인 활동, 감성적 활동 그리고 실천적 활동의 종합적인 균형적 상호작용에 근거한다. 그래서 삶의 절대적 만족은 불가능하나 삶의 상대적 만족은 가능하고, 삶의 온전한 만족은 불가능하나 삶의 부분적 만족은 가능하며, 삶의 영속적 만족은 불가능하나 삶의 일시적 만족은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상대적이고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만족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지탱될 수 있다. 그러한 삶에 나름의 의미가 가미되고 그것이 삶의 토대가 된다면 더욱 그렇다. 삶에 어려움이나 아픔이나 외로움(고독)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생은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다를지라도 어차어렵고 아프고 외로운 것이기에.
(화, January 9, 2024: mhpar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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