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하루 살기: 아주 특별한 일상과 아주 평범한 명작>

2023. 2. 23. 01:11아주 특별한 일상-아주 평범한 걸작

때로는 역설적 표현이나 상황이 삶의 본질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표현 증 하나가 바로 ‘특별한 일상’이란 말과 ‘평범한 명작’이란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 말들은 어법상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면을 담고 있다. 우리는 대개 특별하다는 것은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면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함과 일상은 마치 ‘작은 큼’ 내지 ‘큰 작음’이란 말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고 모순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른 생각은 아니다. 일반적인 이해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서로 구분은 될 수 있어도 온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 두 면의 적절한 조합이 우리 삶에서 다름을 일구어 낸다.

다른 한편으로, 평범함과 명작(걸작)도 서로 부합하지 않는 말처럼 들린다. 오히려, 비범함과 명작이나 평범함과 범작(mediocre)이 서로에게 어울리고 적합하게 들린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을 ‘대단함’(greatness), 곧 대단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보지 않고 고유성으로 이해한다면, 모든 것은 저마다 고유하고 특별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나름의 명작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결코 실제 명작이나 걸작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명작은 분명 뛰어나고 대부분의 것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탁월하다. 다만, 사람들의 인정이나 양적 정도의 면으로 보기보다는 각각을 그 자체의 질적 고유성으로 보면 평범한 것도 나름의 명작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비슷한 일도 각각의 독특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든 평범성을 특별하게 보고 특별성을 평범하게 보면서 그 둘을 매일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연결 짓는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둘은 인생이라는 자기만의 작품 속에서 하나로 묶여 명작-최소한 자기가 볼 때라도-이 될 것이다.

명작 또는 걸작(masterpiece)은 말 그대로 명인, 곧 자기 분야를 충분히 익힌 장인이나 공예가가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 한 점(a piece)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명작이나 걸작으로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장인이나 공예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걸작으로 인정할 만큼 최선을 다해 작품 한 점(piece)을 만들면 그게 자기 인생의 걸작, 자기 세계의 명작이 된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좀 어떤가?

우리는 각기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가 인정하면 족하지 않은가? 자기의 혼신을 다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서 자기 존재와 혼이 담겼는데, 어떻게 그것에 값을 매길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그것은 가격을 산정할 수 없이 당사자에게 대단히 귀하다(priceless).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특별한 삶을 꿈꾸면서도 일상의 특별성과 명작(걸작)의 평범성을 잊거나 등한시한다. 그러면서도 미래의 어느 특별한 날에 뭔가 큰 것이 이루어지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몽상이다. 그러한 특별한 삶은 결코 그렇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바라거나 아니면 불행하게도 그것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하루를 자신만의 명품으로 만드는 삶이 있어야 평생의 삶이 자신만의 명작이 되게 할 수 있다. 일상을 특별하게 보내야 전체의 삶이 차이를 만들 수 있고 다를 수 있다. 삶의 특별한 것은 일상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을 귀하게 여겨야 명작을 만들 수 있다.

나만의 명작은 평범한 삶 속의 부단한 노력 가운데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일상! 그리고 아주 평범함 명작! 하루의 삶의 의의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기에 마음에 새겨도 되는 좋은 말이다.
(화, February 21, 2023: mhparkⒸ2023)